항생제는 박테리아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약물로, 감염성 질환 치료에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 약물은 ‘선별적’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균뿐 아니라 우리 몸에 유익한 ‘장내 미생물’도 함께 사멸시킵니다. 특히 광범위 항생제는 수많은 미생물 종에 영향을 미쳐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급격히 감소시킵니다.
항생제, 어떻게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치는가?
장내 미생물군은 단순한 소화 보조자에 그치지 않고, 면역 조절, 비타민 생성, 독소 해독 등 광범위한 생리작용에 관여합니다. 이런 미생물 군집이 항생제에 의해 붕괴되면, ‘디스바이오시스’라는 불균형 상태가 발생하며, 염증성 장 질환, 비만, 면역질환 등의 위험이 증가합니다. 짧게는 항생제 복용 직후 설사, 복통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길게는 몇 주에서 수개월간 장내 환경 회복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단 1주일간 항생제를 복용한 뒤에도 장내 미생물 다양성은 평균 30~50% 감소하며, 일부 유익균은 수개월이 지나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항생제는 감염 치료에 필수적이지만, 장내 생태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연구는 ‘장-뇌 축’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장내 미생물과 감정 상태, 뇌 기능 간의 밀접한 연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장은 ‘제2의 뇌’라 불릴 만큼 많은 신경세포와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는 기관이며, 이는 뇌와 양방향으로 소통합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장내 미생물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장내 유익균은 세로토닌(행복 호르몬), 도파민(동기와 쾌감에 관련), GABA(불안 억제 신경전달물질) 같은 주요 물질의 생성을 돕습니다. 실제로 전체 세로토닌의 약 90%는 장에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장내 환경이 건강하면 스트레스 대응 능력과 기분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반대로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불안, 우울, 집중력 저하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장내 세균은 또 면역세포를 자극하여 염증반응을 조절하며, 이 염증 역시 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만성 저등급 염증은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으며, 이는 항생제로 인한 장내 환경 변화가 단순히 위장 증상을 넘어서 기분장애를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항생제 복용 후 나타날 수 있는 감정 변화
항생제 복용 후 일부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감정 변화나 기분 저하를 경험합니다. 흔한 증상으로는 무기력감, 집중력 저하, 불안, 예민함 등이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경미한 우울 증상도 보고됩니다. 이는 단순한 약 부작용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신경전달물질 감소에 따른 반응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 실험에서는 건강한 성인에게 광범위 항생제를 투여했을 때, 장내 미생물군이 변화함과 동시에 뇌의 정서 반응 영역에서 활동 감소가 확인되었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항생제를 반복적으로 복용한 사람일수록 우울증 진단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통계적 연관성도 제시됐습니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항생제 복용이 반복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ADHD 같은 신경발달 장애와의 연관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항생제가 장내 뇌 발달 과정에 영향을 주는 방식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런 변화는 개인차가 있으며 항상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 건강과 기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항생제 복용 후의 감정 변화는 간과하지 않아야 합니다.
항생제 복용 후 손상된 장내 환경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몇 가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프리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오틱스의 적극적인 섭취입니다. 프리바이오틱스는 유익균의 먹이 역할을 하며, 프로바이오틱스는 실제 균주를 보충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락토바실러스와 비피도박테리움 계열은 장 건강 회복에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는 항염 식단 유지입니다. 항생제 복용 후 장 점막에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고당분·고지방·가공식품은 피하고, 채소, 과일, 발효식품 중심의 식단이 필요합니다. 식이섬유와 폴리페놀류는 미생물 다양성 회복을 촉진하는 핵심 성분입니다.
또한 운동과 수면 역시 장내 환경 복구에 중요합니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증가시키며, 수면 부족은 미생물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항생제 복용 후 최소 2~3주는 회복을 위한 집중 관리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6개월까지도 균형 회복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항생제는 필요하지만, 장과 기분에도 영향을 준다
의학계에서는 항생제와 우울증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려는 연구가 다수 진행되었습니다. 영국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광범위 항생제를 2회 이상 복용한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 진단률이 최대 50%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항생제가 장내 유익균을 손상시키고, 이로 인해 뇌 신경전달물질에 변화를 유발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특히 특정 항생제 계열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있어, 복용 후 불안, 불면, 혼란감 등의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물론 이는 소수이긴 하지만, 기분 변화와의 연관성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정신건강 상태가 취약한 사람이나 과거 우울증 병력이 있는 경우, 항생제 사용 시 더욱 신중해야 하며, 복용 후 기분 변화가 지속된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항생제는 현대 의학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치료 도구입니다. 하지만 무분별하거나 과도한 사용은 장내 미생물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 결과로 감정 상태나 기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장은 단지 소화기관이 아니라, 면역·신경·정서 기능에 이르는 복합적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항생제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하며, 복용 전후로 장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생활 습관(예: 식이 섬유 섭취, 유산균 보충, 스트레스 관리 등)을 함께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감정 변화나 기분 저하가 동반된다면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넘기지 말고, 장-뇌 축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과 기분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항생제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 뇌와 감정까지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